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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ny`s Book Story
영화, 드라마, 시리즈

영화 더 플랫폼 평점 해석 결말 줄거리, 넷플릭스 스릴러 영화, 인간 탐욕과 계급사회 적나라한 모습

by 알럽써니 2024. 11. 18.

 

 

 
 

인간의 본성은 공평할 수 없다.

그것이 생존과 관계된 것이라면 더더욱...

수직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모든 것은 생존이다.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더 플랫폼(The Platform, El Hoyo) 2019는 강렬한 충격을 선사한다. 영화의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왜일까... 끔찍하고 역겨운 인간의 탐욕을 보면서도 그것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본성이 바로 이거다!라는 묘한 느낌으로 끌어당기는 때문이 아닐까...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이 영화 더 플랫폼(The Platform, El Hoyo) 2019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함축적으로 마음에 다가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이 영화를 본 누구라도 잔인하다, 역겹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쩌면 끝까지 영화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마력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또한 영화 더 플랫폼(The Platform, El Hoyo) 2019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다양한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신선도가 있다. 때문에 IMDb에서는 평점 7.0 그리고 로튼 토마토에서는 7.9의 비교적 높은 평점을 주고 있고 새로운 장르의 SF, 스릴러 영화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제44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과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이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다.

더 플랫폼

The Platform, El Hoyo

개봉일 / 2020. 5. 13

스페인 영화

SF, 스릴러, 공포

러닝타임 / 94분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평점 / 관람객 7.75

네티즌 7.13

감독 / 가더 가츠테루 우루샤

출연진 /

이반 마사구에 / 고렝

조리온 에귈레오 / 트라마가시

안토니아 산 후안 /이모구리

에밀리오 부알레 / 바하랏

알렉산드라 마상카이 / 미히루

영화 더 플랫폼(The Platform, El Hoyo) 간략 줄거리 결말

지하 48층에서 깨어난 고렝은 자진해서 이곳 수직감옥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6개월만 버틴다면 자신이 원하는 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제안을 수락한 것. 그리고 그가 가지고 온 유일한 친구는 '돈키호테' 소설책이었다. 같은 층에서 만난 할아버지 트리마가시는 이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있었는지 이곳 수직감옥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듯...

각 층마다 딱 2명이 수감되어 있고 한없이 수직으로 된 감옥에는 몇 층까지 있는지 누가 왜 들어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매일 하루 한 번씩 수직감옥으로 오르내리는 컨베이어식 배식에 생존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맨 꼭대기 층으로부터 시작되는 음식 배식. 그것은 이곳에 수감된 모든 사람이 다 먹을 수 있는 양이지만 이미 48층까지 내려왔을 때는 위에서 사람들이 먹고 남은 쓰레기 같은 찌꺼기만 존재한다. 그리고 더 깊은 구덩이로 내려갈수록 사람들에게 먹을 음식은 그야말로 쌀 한 톨도 남아있지 않다.

이곳 수직감옥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 6세 이하의 어린아이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

- 반드시 수직 컨베이어가 내려와 멈췄을 때만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저장할 수 없다. 만약 음식을 저장하거나 숨겨두게 되면 그 층의 감옥은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져 육체가 견딜 수 없게 된다.

- 한 달에 한 번 모든 죄수들은 각기 다른 층에 배정을 받는다. 그것도 무작위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할아버지 트리마가시는 컨베이어에 내려온 음식을 정말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그리고 처음에는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던 고렝도 이곳에 적응을 하면서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 달이 흘러 방이 바뀌면서 더 깊은 구덩이 171층에 갇혀버린 두 사람... 트리마가시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함께 정을 나눴던 고렝을 묶어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면서 그의 살을 베어 먹기로 한다. 그러나 아이가 있다면서 찾으러 다니는 여인 미히루에 의해 트리마가시가 죽임을 당하고 위험에서 벗어난다.

다시 한 달이 흘러 깨어난 곳은 람세스라는 강아지와 함께 온 여성 이모구리와 17층에서 깨어난다. 171층에서 죽다 살아난 고렝에게 17층에서의 음식은 진수성찬... 여기서 이모구리는 아래층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적당히 먹기만 한다면 충분히 배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지속적으로 시도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이 두 사람이 깨어난 층은 202층... 생존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이모구리는 이곳에서 25년 동안 직원으로 일했다면서 암에 걸려 스스로 이곳에 들어온 것이라 말했고 결국은 자살을 선택한다. 아마도 고렝에게 자신의 살을 주어 살게 하려고 했을까?? 다시 고렝이 깨어난 층은 6층.. 이곳에서 흑인 바하랏을 만난다. 그는 위층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만 받으면 5층만 올라간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곧 좌절하고 만다.

고렝과 바하랏은 이 수직감옥에 대해 음식을 배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모험을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수직감옥의 관리자들이 알고 있는지, 모른다면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맨 밑바닥 층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이곳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로 한다.

그렇게 음식 컨베이어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는데 굶주림에 죽은 사람, 서로 살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도착한 층... 333층...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어린 소녀.. 미히루가 찾던 바로 그 아이였다. 그리고 가장 밑바닥에 내려간 미히루 딸과 고렝.. 고렝은 미히루를 가장 상층인 0층으로 보내고 자신은 그곳에 남는다.

영화 더 플랫폼(The Platform, El Hoyo) 해석

넷플릭스 영화 더 플랫폼은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하게 만든다. 도대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뭘까?라는 목적의식을 가지지 않더라도 영화를 보고 나면 묵직하게 가슴에 남는 무언가는 모두에게 공통된 해석이 아닐까.....

영화 제목의 El Hoyo 엘 오요는 스페인어로 '구멍' 또는 '구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깊고 깊은 구덩이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각각의 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계급의식과 권력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묘한 관계를 영화는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 가장 대표되는 것으로 생존과 관련된 음식으로 강렬하게 보여준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지.

꼭대기에 있는 자

바닥에 있는 자

추락하는 자

지상 0층에 있는 사람들

음식을 만드는 그들은 구덩이의 상황을 알까?

넷플릭스 영화 더 플랫폼을 보는 내내 그런 의구심이 든다. 과연 가장 꼭대기에 있는 그들은 이 구덩이 속의 처참함을 알고 있을까? 그러나 이내 해답은 내릴 수 있다. 알고 있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자신들의 할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는 이 음식을 만들 때 매우 까다롭고 깨끗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머리카락 하나 가지고도 호통을 치는 점장을 볼 수 있으니까...

지상 0층은 구덩이 사람들이 그토록 올라가고 싶은 곳이지만 어찌 보면 그곳에서도 또 다른 계급이 존재하고 있으며 상하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수직감옥의 운영진들은 이런 구덩이의 상황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우리 사회 구조의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보게 하는 것으로 가장 높은 계층의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외면하며 살아가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수직감옥에 있는 사람들

위 층에 있는 사람들은 아래층에 대해 강한 지배의식을 가지고 있다.

넷플릭스 영화 더 플랫폼 속에서는 무려 333층의 수직감옥으로 되어 있다. 각 층마다 음식이 내려올 때마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 적당히 먹을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언제 또 이런 음식을 먹을지 모른다는 생존에 대한 강박증은 사람들을 본능에 충실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보다 일단 내 배를 채우고 본다. 그렇게 쓰레기가 되어 내려가는 음식은 지하 60층 이하로는 사람들이 먹을 것이 남지 않는다.

 
 
 

생존이라는 것은 먹는 것이다.

그리고 그 먹는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진 자가 갑이 되는 세상...

수직감옥은 우리의 사회구조를 적나라하게 비춰주며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위층에서 먹다 남은 쓰레기를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굶주림은 사람들을 짐승으로 만들고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수직감옥에서는 생존을 위해 약육강식이 일상화가 되었다. 먹을 게 없는 층은 한 달을 버티지 못해 서로 죽고 죽이는 살인이 자행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구덩이로 추락한다.

사람들은 매번 다른 층에서 깨어나면서도 음식에 대한 보상심리와 탐욕으로 더 이상의 배려나 적절한 배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탐욕 본능에 따라 자신의 층에 충실할 뿐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트리마가시 할아버지... 그는 함께 정을 나누며 동료로서 지냈던 고렝을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고렝의 살을 뜯어먹기로 한 사람... 어찌 보면 생존이라는 문제 앞에서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는 처절한 사회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남을 배려하는 사람 / 이모구리

엉뚱하지만 실행력을 갖춘 사람 / 고렝

얼떨결에 그 실행력에 동참하는 사람 / 바하랏

넷플릭스 영화 더 플랫폼에서 주목해야 하는 세 사람.. 이모구리, 고렝, 바하랏은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물구조의 대표성을 띤다. 이모구리는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 것을 생각하고 이상주의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음식 컨베이어가 내려왔을 때 자신의 몫만 딱 먹고 다른 이들이 적절하게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 딱 2접시의 음식들을 담아 내려보낸다. 그렇게 각 층에서 먹을 만큼만 먹고 다음 층에 2접시씩만 내려보낸다면 이곳 수직감옥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지만... 이곳은... 이미 공평을 잃어버린 수직구조라는 사실... 이성이 마비된 생존 감옥에서는 이모구리의 이상주의는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202층에서 깨어났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이런 사람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이상주의적 조화를 꿈꾸는 사람... 그러나.. 그 결과는 언제나 또다른 벽에 막힌다.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벽...

고렝은 자신이 가지고 들어온 책 '돈키호테'와 같은 사람이다. 엉뚱하지만 한 가지 생각을 하면 실천력을 발휘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이루어내고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 고렝은 처음에 트리마가시의 생각을 좇기도 했고 다음으로 이모구리의 생각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만의 생각을 창조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로 변화의 물꼬는 이런 돈키호테 같은 사람에 의해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고렝이 333 끝까지 가서 찾아낸 미히루의 딸을 지상으로 올려보낸 것은 거대한 변화의 메시지이고 변화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바하랏 역시 의미를 가진다. 지상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이 가득한 남자이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고렝과 같은 돈키호테에 힘을 실어주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고렝의 사고력에 실천력을 실어준 조력자.. 그가 바로 바하랏이다. 사회의 그늘진 약자 영화에서는 흑인으로 표현된 약자의 위치에 있지만 실천력을 가지고 밀어부치는 힘을 가진 그들이 이 사회를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최하층 333과

그곳에서 만난 소녀 미히루의 딸

333이라는 숫자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고렝, 바하랏, 이모구리가 상징하는 사회 변화에 필요한 요소들, 그리고 여자, 노인, 약자라는 사회의 취약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고렝이 만난 소녀는 음식 컨베이어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 엄마 미히루의 사랑을 보여준다. 미히루는 매달 다른 층에서 깨어나면 죽음과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로 향한다. 그곳에는 바로 자신의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아이를 지키기위해 스스로 지하로 내려가는 엄마의 마음... 가장 연약하고 취약계층인 여인의 몸으로 지하 333층까지 내려가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중간에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번 그렇게 지하로 내려가는 것은 그녀는 소녀의 엄마이기 때문에... 아마도 미히루는 이곳 감옥에 들어올 당시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거나. 감옥에서 강간을 당해 아이를 낳았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여하튼 6세 이하의 어린이는 이 감옥에는 절대로 들어올 수 없다. 그래서 이 아이는 반드시 지상으로 올려보내야 한다. 이것이 이 수직감옥의 참상을 알리는 메시지가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 고렝과 바하랏은 끝까지 내려갔고 그 일을 해낸다. 영화는 줄거리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상상을 펼치도록 했고 결말을 시원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만 그 이후의 구덩이 속 감옥이 변화의 바람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변화는 가장 용기있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지만 변화는 위에서 아래로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인간 사회의 본질적인 구조라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SF 스릴러 넷플릭스 영화 찾는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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