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 란 Uprising
선조, 겐신, 김자령, 정여립 등의 실존 인물을 알고 보면 훨씬 재미가 더해질 것입니다.
전, 쟁, 반, 란 총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스토리 끝에 큰 글자로 나타나 하나의 테마씩 끊어져 전개됨을 알려줍니다. 박찬욱 감독이 각본, 제작에 참여해 관심과 기대감을 모았을 뿐만 아니라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김신록, 진선규 등의 연기력을 갖춘 쟁쟁한 배우들의 열연과 화끈한 액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영화 전, 란 (Uprising)의 등장인물 중 선조, 김자령, 깃카와 겐신이 모티브 된 실존 인물에 대해 알아보면서 주인공 천영(강동원)과 이종려(박정민)의 우정에 대해 리뷰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여립의 사상
천하는 주인이 따로 없다!
영화 초반 정여립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이는 전체 줄거리의 핵심이자 주인공 천영과 이종려 간의 우정의 근간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하는데요.
조선의 사상가였던 정여립은 높은 명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천하공물론을 주장했는데 '천하는 공물이니, 어찌 주인이 따로 있으리요'라고 주장했습니다. '누구든 임금으로 모시고 섬길 수 있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신분제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는데요. 당시에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라 조정에 큰 위해가 되었습니다. 정여립의 사상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면서 대동계가 조직되었고 양반과 노비가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눠 먹고 무술을 연마했다고 하는데 이후 모반죄로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확인이 어렵습니다.
무신 집안의 노비가 된 천영
이종려와의 우정
양인으로 태어났던 소년은 생활고로 양반집 노비가 되었던 어머니로 인해 신분이 하락하게 되고 맙니다. 당시 조선시대 신분제는 매우 불합리한 때문에 모계 혈통을 따라 신분이 결정되었는데요. 억울하게 노비가 되고 만 소년은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의 몸종이 됩니다. 귀한 아들이라 매를 댈 수 없다는 이유로 스승과의 대결에서 실수할 때마다 대신 회초리를 맞는 소년은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아내죠. 이때 양반집 아들이 이름을 지어주죠. 천영 "따를 천, 그림자 영'이라고. 그러나 훗날, 김자령은 다른 뜻으로 천영을 불러줍니다. '하늘 천, 빛날 영' 정말 다르죠?? 그림자처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훗날 하늘에 빛나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바뀝니다. 이때 김자령은 말하죠.
내가 자네 아비였다면
이렇게 지었겠네.
타고난 신체와 순발력, 관찰력으로 아예 무술 연마를 위한 훈련 대상이 되는데요. 이런 몸종을 아끼는 마음이 생긴 종려는 허물없이 대하며 친한 친구가 됩니다.
성장해서도 무과시험에 매번 낙방하자 天煐이 대신 과거를 보아 급제하기에 이르는데. 이때 무과 급제 조건으로 노비 면천을 약속했던 병참은 오히려 죽이려 하죠. 이유는 대신 과거시험을 봐 주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눈치챈 이종려는 자신의 검을 주면서 도망치도록 도와줍니다.
시험장에서도 이럴 테냐!
네 칼엔 분노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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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적을 만나면 내 칼에도 분노가 실릴 터이니...
신분의 격차를 내려놓은 두 사람의 우정은 훗날 서로 다른 입지에서 만나게 됩니다. 임진왜란 때 왕을 호위하며 피란 길에 오른 종려는 자신의 식솔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른 사람이 天煐이라 오해했고 죽이려 듭니다. 한편 천영은 7년이라는 전쟁터에서 혹독한 싸움을 하며 살아남았지만 공로를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역적으로 몰리면서 강한 배신감을 갖게 되죠. 이렇게 날카로운 감정을 가지고 절박한 상황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 결국 오해는 풀리고 끈끈한 우정을 다시 확인합니다.
전, 란 (Uprising)에 출연한 강동원과 박정민 배우의 연기와 액션은 정말 볼만합니다. 서로 무술 실력을 쌓으며 훈련하는 과정, 마지막 결투에서 왜군 겐신을 처단하기 위해 싸우면서도 서로에 대한 오해로 분노의 칼을 들이대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인데요.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도록 합니다. Movie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도성을 버리고 떠나는 선조
성품은? 실제 그랬을까?
제 개인적으로는 차승원 배우의 선조 연기는 명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역사 고증 상 꼭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선조의 어화를 기반으로 수염까지 재연해 낸 것을 보면 매우 닮았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실화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지만 도성을 버리고 피란 길에 오른 것과 먹을 것을 가지고 타박하는 장면, 자신의 안위를 챙기는 장면 등은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그대로 재연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Movie 속 선조는 한양으로 돌아와 오직 경복궁 재건에만 열을 올리며 백성들의 안위는 전혀 안중에 없어 보입니다. 파렴치한에 이보다 더한 악한 왕은 없을 정도인데요. 게다가 남산의 나무를 다 베어도 좋다는 말을 할 때는 한대 패주고 싶은 인물로 표현됩니다. 정여립의 사상에는 정면 배치되는 강력한 군주제를 표방합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영화 속 선조와 비슷한 모습, 강력한 신분제와 군주제를 지지했지만 백성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민생 복구에 힘을 쏟았고 오히려 궁 증축에 집착한 것은 선조가 아니라 광해군이라고 합니다. 이점 참고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의병장 김덕령을 모티브 한 김자령
배우 진선규가 연기한 김자령은 의병장으로 전라도 어투를 매우 고급스럽게 구사합니다. 오랜 전투에서 녹초가 된 피부,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조정을 향한 신뢰를 드러내는 충성심, 민심을 한몸에 받고 있음에도 자만하지 않는 강인한 내면을 보여주었는데요. 양반과 노비라는 신분의 경계를 없앤 듯 민초와 함께 어울리고 전쟁의 고난을 이겨낸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도성으로 향한 김자령은 선조의 질투심과 이종려의 天煐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반란군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합니다.그가 한 대사는 귓가에 남습니다.
연기 없이 불이 났는데 끌 방도가 없어
입을 다물었소이다.
나를 역도로 만들었으니
소원대로 그리되어주마.
김자령은 덕망이 높다는 등의 내용으로 미루어 실존 인물 김덕령을 모티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덕령은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인지도가 높지만 조선왕조실록부터 호남 창의록까지 살펴도 아무런 전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군율을 매우 엄격하게 집행해 비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휘하에서 도망친 군졸들도 허다했다고 합니다. 김덕령의 죽음은 왕권이 실추된 정황과 반란군의 제압이라는 면에서 실행되었는데. 보통은 공이 있고 유능한 의병장은 역모에 이름이 거론되었어도 불문에 부쳤지만 이산겸, 김덕령은 공은 없고 이름만 있었기에 죽음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실제와는 조금 다르게 각색된 것이라는 점 참고해서 관람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왜장 겐신 VS 항외 김충선
Movie 전, 란(Uprising) 중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왜장 겐신입니다. 그는 코를 베는 귀신으로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아 잔당을 이끌던 중 청의 검신과 김자령 등의 의병에 잡혀 조정으로 압송됩니다. 그러나 반란을 꾀한다는 이유로 의병을 토벌하는 데 조정의 대신이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는데요. 결말에서 이종려를 비롯한 관군을 배신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려다 천영의 칼에 죽임을 당합니다.
영화 속에서 표현된 겐신이 항외 군사로 그려진 것으로 보아 실제 역사 속 김충선을 모티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초기, 무자비하게 살인, 약탈을 일삼고 배신이 만연한 일본군에 질려 조선에 투항한 항외 인물로 병자호란까지 참전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이었던 그는 일본 이름은 사야가였죠. 조선에 공헌한 인물로 영화 속 겐신과는 전혀 결이 다릅니다. 조선에 조총 보급, 훈련을 도왔고 사격술을 지도했다고 하는데요. 검술에도 능했다고 합니다. 그는 공로가 인정되어 권율, 한준겸의 주청으로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고 이후 곽재우 등의 의병과 함께 왜군 격퇴에 공을 세웠습니다. 조총 전문가로서 조선에도 일본과 같은 수준의 조총 양산을 하게 되었고 국방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역사극이지만 각본 각색이 창의적이라 더 재미있었습니다. 너무 똑같은 고증 대신 이종려, 천영이라는 서로 다른 신분의 사나이들이 나누는 우정은 매우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친구란 그런 거니까요. 진정한 우정에는 신분도 나이도 없습니다. 그것은 영화의 시작점에서 시사했던 정여립의 사상이기도 했죠. 죽어가는 이종려가 천영에게 용서를 구하며 남긴 한마디는 잔잔하게 마음을 울립니다.
천영아. 내가 아직도 네 동무니?
역사를 모티브 한 영화 전, 란(Uprising). 그 속에서 서로 다른 신분,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무척 감동적으로 와닿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워도 좋은 영화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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