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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ny`s Book Story
에세이

여행 감성 에세이 시인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by 알럽써니 2021. 5. 28.
여행을 떠날 때는 따로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세상이 곧 책이었다.
기차 안이 소설책이고, 버스 지붕과 들판과 외딴 마을들은 시집이었다.

그 책을 나는 읽었다.
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인생 수업을 위해 떠난 인도 여행

'지구별 여행자'를 만난 건 개인적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또 이와 같은 진한 감동과 영적인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책이 또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매력적인 것이다. 

 

류시화 시인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두터운 마니아 층이 있지만 더욱이 '지구별 여행자'를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생각과 철학에 깊이 매료당하지 않을까. 시인은 15년 동안 매해 인도에 여행을 떠났다. 글감을 찾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여정이기도 했지만 인도, 네팔, 티베트 등지에서 만난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을 잊지 못한 탓도 있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글 속에는 진정성과 영적인 에너지가 가득하다. 아무래도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여행을 통해 깨닫는 만큼 깊이가 더해진 까닭이다. 

 

류시화 시인은 '하늘로 떠난 여행'에 이어 '지구별 여행자'를 출간함으로써 그가 인도에서 경험한 에피소드를 담아냈다. 그가 영적인 스승으로 생각하는 오쇼,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바바 하리 다스, 달라이라마, 틱낫한, 무린드라 등의 책을 번역하면서 그 역시도 물질적인 것보다 영적인 부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가 만난 길 위의 노인, 새점을 치는 사람, 거지 여인, 수행자, 강도 등은 하나같이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가장 평범한 곳에서 시인이 마주한 것은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가치였고 행복이었고, 철학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구별 여행자'로서 인생 수업을 받기 위해 잠시 이 세상에 머물다가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학교는 내게 너무 작은 것들을 가르쳤다.
내가 다녀야 할 학교는 세상의 다른 곳에 있었다.
교실은 다른 장소에 있었다.
보리수나무 밑이 그곳이었고, 기차역이 그곳이고, 북적대는 신전과 사원이 그곳이었다.
사기꾼과 성지의 걸인, 동료 여행자들이 나의 스승이었다.

 

서둘러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어.
서두르다간 오히려 잃기 마련이지.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 대부분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이 세상은 영혼을 위한 학교'라고. 나도 어느 순간 그런 이야기가 익숙해져 인생 수업을 착실히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때문인지 서두르는 일도 줄었고, 화내는 일도 줄었다. 이런 것은 성격의 변화를 주고 건강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는 듯하다.

 

시인 역시 인생에 대해 '영혼의 학교'라는 표현으로 깨달음을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여행을 온 것이기에 더 배우고, 더 경험하고, 더 성장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그가 만난 인도인들은 하나같이 나름의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 '지구별 여행자'들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그중 시인이 여행 중 기차 간이역에서 만난 노인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인도는 날이 덥기 때문에 반드시 음료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 가운데 '망고 주스'는 매우 맛있다고 한다. 마침 간이역에 정차했을 때 얼른 내려 망고주스 가게로 향했는데, 가게 주인 노인장은 시속 10km의 속도로 느릿느릿 움직이면 시인의 애간장을 태운다. 

 

"빨리! 빨리!"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느릿느릿 행하며 주스를 내놓자 시인은 너무 급한 마음에 소변까지 마려울 지경이라고 털어놓을 정도. 그러나 노인은 이런 상황과 상관없이 시인을 향해 훈계를 쏟아낸다.

서둘러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어.
서두르다간 오히려 잃기 마련이야

 

그리고 그의 말대로 시인은 정신없이 서두르다 값을 지불한 망고주스 봉투는 버려두고 기차에 올랐다. 망연자실... 서두르다 잃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역시 느릿느릿 망고주스 봉투를 든 노인이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결국 떠나는 기차에서 손을 내밀어 간신히 봉투를 건네 받으며 고마움의 인사를 나누었는데 역시 노인은 친절함과 함께 그의 말을 다시 새겨주었다. 서둘러서 얻을 건 없다고, 오히려 잃게 된다고 말이다.

 

기차 여행에서 만난 망고주스 파는 노인을 통해 시인은 깊은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지구별 여행자'를 읽고 있는 독자 역시 노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라.

 

삶은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계획과는 상관없이 흘러가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좋은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말한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불평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좌절감에 헤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시인 역시 12년에 한 번 열리는 마하 쿰브렐라(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카르마를 씻는 대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인도에 왔다가 교통이 해결되지 않자 불평과 불만을 터뜨렸다. 그때 조용히 다가온 낯선 남자 미스터 굽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영국인들이 인도를 식민지로 건설하고 인도에서 골프장을 만들었소. 그런데 원숭이들이 영국인들이 쳐올린 골프공이 필드에 떨어지자마자 공을 잡아 엉뚱한 곳에 떨어뜨리곤 했는데 이를 막고자 담을 높이 쌓아봤지만 무용지물이었소. 

그래서 결국 영국인들은 새로운 골프 규칙을 정했는데 그것이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 경기를 진행하라'는 것이었소. 이 규칙으로 때로는 엉뚱한 곳에 날아간 골프공을 원숭이들이 홀 컵에 넣기도 하는 행운이 있기도 하고 때로는 홀컵 근처에 떨어진 공을 다른 곳에 놓기도 하는 불운이 생기기도 했다오

시인은 그제야 굽타의 이야기의 뜻을 알아차렸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자신의 계획대로 다 이루고 살 수 없다는 것. 매번 원숭이가 튀어나와 골프공이라는 삶을 엉뚱한 곳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가르침을 시인은 인도에서 만난 '지구별 여행자'를 통해 배우고 있다. 평범한 곳에 진리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많이 배우고 학식이 높은 사람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과 철학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가슴 가득한 감동을 주는 이유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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